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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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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역사

제 1회 기념 총회(원기13년3월)를 마치고 제 2회에 접어 들면서 

새 회상이 먼저 착수한 중요한 일은 교화 기관지의 발행이었다.
원기 13년(1928·戊辰) 5월에 월간(月刊) [월말통신(月末通信)]이 

송 도성(硏究部書記) 주간(主幹)으로 창간되어 복사판으로 34호(원기15년 12월호)까지 

발행하다가, 교서 편찬 등 사무 관계로 부득이 한 동안 중단되었으며, 

원기 17년(1932·壬申) 4월에 복간, [월보(月報)]로 개제하여, 

전 음광(硏究部長) 주간 아래 등사판으로 48호(원기18년 6월호) 까지 발행하다가, 

출판법 관계로 적발되어 48호 전부를 일경(日警)에게 압수 당하고 폐간 되었다.
원기 18년(1933·癸酉) 9월, 총독부 당국의 정식 허가를 얻어, 

월간 [회보(會報)](全飮光주간)를 창간, 등사판 발행을 계속하다가, 

원기 19년(1934·甲戌) 12월호(會報13호)부터 이 공주(通信部長) 주간으로 

인쇄판을 발행, 점차 부수가 증가되었으나, 25년(1940·庚辰) 

제 2차 세계 대전이 급박해지면서 계간으로 바꾸었다가, 

26년(1941·辛巳) 1월, 통권(通卷) 65호를 마지막으로 마침내 휴간하였다.
[월말 통신(月末通信)]은 당시 몇 개소의 지방 교당에 법설 요지와 

총부 전달 사항 및 교단 소식을 주로 보도하였고, [월보]와 등사판 [회보]는 

거기에 의견 교환의 역할도 겸하였으며, 인쇄판 [회보]는 차차 교화와 문화 기능도 

겸하게 되어, 일정(日政) 압제 아래 유일한 문화 활동의 명맥이 되었고, 

법설 기재와 감각·감상·의견·처리·문목건 등의 제출이 많이 권장되어, 

초기 교단의 정신적 유산으로 길이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