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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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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역사

원기 12년(1927·丁卯)에 발족한 산업부 창립단은 꾸준히 기금 조성에 노력하여 오다가, 

원기 13년(1928·戊辰) 10월에 박 대완(朴大完)의 의견을 받아 들여 

총부앞(現大覺殿貞和院間)에 복숭아 과수원을 시작하여 좋은 성과를 보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진안 만덕산에 4천 여주의 감 과수원, 황등(益山郡黃登面)에 2천 4백주와 

총부 뒤 알봉(謁峰)에 7백주의 밤 과수원, 총부 부근(現圓光大學敷地一部)에 

1천 여주와 영산 교당 앞에 1천 여주의 복숭아 과수원, 신흥 교당 부근 이흥(驪興)에 

2천 여주의 종합 과수원이 창설되었고, 21년(1936·丙子)에는 산업부의 가옥을 독립 신축하고, 

각종 묘목·약초·야채의 재배와 양계·양돈·양토(養兎) 등을 병행하여 큰 성과를 보게 되었다. 

또한 22년(1937·丁丑) 9월에는 산업부의 양계를 대폭 확장하여 

총 18간(間)의 계사(鷄舍)를 신축하였고, 생산된 계란은 멀리 만주에 까지 

대량 수출하여 새 회상 산업 활동의 기세를 올렸다. 
한 편, 원기 19년(1934·甲戌) 8월에는 이리에 보화당 한약방을 합자 회사 형식으로 창설하니, 

이것이 후일 새 회상 수익 기관의 으뜸을 이루는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이는 대종사께서 앞으로 교단 자선 병원(慈善病院이름濟衆院)의 설립 기금과 

교화 교육 사업의 기금을 마련하실 뜻으로 설립하신 것인 바, 

그 동안 신정 예법의 실행에 의하여 저축된 총지부 일반 교도의 공익금(公益金1만원)을 

총 투자하였으며, 대표 이사 이 재철(庶政院長겸임)과 첫 실무 임원(이사 李東安 의사 朴理碩)이 

그 발전의 기반을 다졌다. 
또한, 원기 25년(1940·庚辰) 2월에는 삼례수계리(三禮岫溪里)에 임야 7만평을 사들여 

삼례 과수원을 창설하니, 자본금은 각 지부 출장소의 유지비 자금(維持費資金7천여원)을 

수합 투자하였으며, 초대 감독에 이 동안(産業部長겸임)이 발령되고, 

첫 실무 임원(주무 金碩奎 기사 丁一持)이 파견되어 황도(黃桃)를 주로 하는 

종합 과수원을 시작하였다. 

삼례 과수원은 그 후 삼창과원(三昌果園)·수계 농원(岫溪農園)·은산재단 수계농원 등으로 

개칭되면서 주로 새 회상 기본 인재 양성의 산업 도량으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