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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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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역사

유일학림 개설 후 5년 동안 새 회상은 간고한 가운데서도 학림 중등부를 중학교로, 

학림 전문부를 대학교로 승격 육성코자 꾸준히 활동하여, 원기 36년(1951·辛卯) 6월, 

이리에 원광 중학교의 설립 인가를, 그 해 9월, 총부 동편에 원광 대학의 설립 인가를 얻어, 

학장 박 장식을 초대 중학교장으로, 학감 박 광전(朴光田)을 초대 대학장으로 임명하였다. 

이로써 새 회상의 교육 사업은, 초기의 영산 학원·총부 학원 및 총부를 비롯한 

각처의 야학원 사업과, 해방 후의 국문 강습소 및 학림 교육을 거쳐, 

이제 회상의 개교 정신과 국가의 교육 이념을 조화한 본격적 교육사업으로 발전하여, 

마침내 원광학원 군(圓光學園群)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원광 대학은 당초 교학과(敎學科) 단과의 초급 대학으로 총부 구내에서 출발, 

원기 37년(1952·壬辰) 7월에 제 1대 성업 봉찬 사업의 일환으로 교지(校地) 확보와 

교사(校舍)의 첫 건축에 착수하여, 38년(1953·癸巳) 1월에 교학(敎學)·국문학(國文學) 

2과의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되었으며, 3월에 제1 본관을 준공하고, 39년(1954·甲午)에 

도서관을 신축하여 총부 도서실 장서(藏書) 전부를 이양 받은 후, 

해마다 학과 증설과  교사 증축을 거듭하다가, 52년(1967·丁未)에 대학원을 설립하고, 

56년(1971·辛亥) 12월에 종합 대학교로 승격되었다. 

원광 대학교는 대학 교육으로 국가 사회에 공헌함은 물론, 

원불교학과로 새 회상 교역자를 많이 양성 하였으며, 부설 원불교학 연구회와 

종교 문제 연구소는 새 회상의 교학 수립 및 타종교와의 비교 연구에, 

해외 포교 연구소는 새 회상의 해외 포교 준비에 상당히 공헌하였다. 
원광 중학교는 원기 37년(1952·壬辰) 10월에 교지를 확보하고, 

39년(1954·甲午) 2월에 고등학교를 설립하였으며, 그 해 4월에 제 1 본관, 

40년(1955·乙未) 5월에 제2 본관을 준공하고, 그 해 9월과 41년(1956·丙申) 9월에 증축 공사, 

42년(1957·丁酉) 4월에 여자 중학생 분리 운영, 50년(1965·乙巳) 6월에 제 3 본관 신축 착수, 

51년(1966·丙午) 4월에 2대 교장 정 광훈(丁光薰)이 임명되었다. 
원광 여자 중고등학교는 원기 41년(1956·丙申) 4월에 원광대학 

부속 여자 고등학원(원장 朴將植)으로  발족, 익산 보화원 강당에서 

수업하다가 42년(1957·丁酉) 4월에 원광 중학교 일부를 빌려 여자 중학생을 흡수, 

45년(1960·庚子) 2월에 여자 중학교와 여자 상업 고등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초대 교장에 정 성숙(丁盛熟)이 임명되었고, 법은 재단을 비롯, 각 교당의 후원으로 

47년(1962·壬寅) 7월에 교지·교사를 확보하여 독립하였다. 
원광 남녀 중고등학교 또한 일반 교육으로 국가 사회에 공헌은 물론, 

적지 않은 전무출신 지원자를 배출하여 교단 인재 양성에 기여하였다. 
이 밖에도, 원기 37년(1952·壬辰)에 도양지부 부설로 발족한 원광 중학원은 

그 후 도양 고등 공민학교·해룡 농업 기술학교로 발전, 마침내 반백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세운 해룡 중학교의 기초가 되어, 성지 근화(聖地近化)에 이바지가 되었고, 

원기 20년대(年代) 이래 꾸준히 계속해 온 총부 야학원을 계승하여 

익산 보화원 원내 교육기관으로 40년(1955·乙未)에 발족한 원광 고등 공민학교도 

총부 근화와 인재 배출에 상당히 공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