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표어와 법어를 발표하신 후,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이제 나의 안 바는 곧 도덕의 정체(正體)요,
나의 목적하는 바는 곧 새 회상을 이 세상에 창건하여 창생을 낙원으로 인도하자는 것이나,
내가 몇 달 전까지도 폐인으로 평을 받았고, 일찌기 어떤 도가에 출입하여 본 바가 없었으며,
현재의 민중은 실생활의 정법은 모르고 허위와 미신에만 정신이 돌아 가니,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
하시고, 포교할 기회를 기다리시었다.
때 마침 증산 교파가 사방에 일어 나서 모든 인심을 충동 하던 중, 길룡리 부근에도 그 전파가
성한지라, 이 기회를 이용하여 방편으로 여러 사람의 단결과 신앙을 얻은 후에 정도를 따라
차차 정법 교화를 하리라 결심하시고, 원기 원년(1916·丙辰) 7월 경, 친히 그 교파 선전원을 청하여
치성하는 절차를 물어, 마을 사람들과 함께 특별한 정성으로 7일 치성을 지낸 후, 보통 생각으로는
가히 추상할 수 없는 말씀과 태도로 좌우 사람들의 정신을 황홀케 하시니, 몇 달 아니되어
이웃 각 처에서 믿고 따르는 사람이 40여명에 달하였다.
대종사, 40여명의 신자들과 서로 내왕한 지 4·5개월이 되었으나, 그들은 대개 일시적 허영심으로 모였고,
또한 그 동안 어떤 통제 있는 생활을 하여 본 바가 없는 이들이라, 그들을 일률 지도할 생각을
뒤로 미루시고, 그 해(원기원년·1916) 12월 경, 그 중에서 특별히 진실하고 신심 굳은 여덟 사람을
먼저 선택하시니, 곧 김 성섭(金成燮)·김 성구(金聖久)·박 한석(朴漢碩)·오 재겸(吳在謙)·이 인명(李仁明)·박 경문(朴京文)·유 성국(劉成國)·이 재풍(李載馮) 등이었으며, 그 후 송 도군(宋道君)을 맞으시니,
이들이 곧 새 회상의 첫 구인 제자이다.
9인 중 첫 제자는 김 성섭이니, 그는 본래 대종사의 가정과 교의(交誼)가 있어 친절함이 형제같은 중,
대종사의 입정 전후에 많은 보조가 있었고, 박 한석은 대종사의 친제(親弟)요, 유 성국은 외숙이요,
박 경문은 족질이며, 이 인명·김 성구·오 재겸은 모두 근동 지우(近洞知友)이고,
군서(郡西) 사람 이 재풍은 오 재겸의 인도로 처음 만났으며, 송 도군은 경북 성주 사람으로,
정법을 찾아 방황하다가 원기 3년(1918·戊午) 3월에 대종사께 귀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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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단체제의 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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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실성업의 전진
- 개교 반백년의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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