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봉래산에서, 각지 신자가 불어남을 보시고, 다시 조단 교화(組團敎化)를 시험하기 위하여,
원기 6년(1921·辛酉) 6월에 영광 지방에 남자 1단을 조직하시고, 8월에 영광·김제·전주 등지를 합하여
남자 1단, 여자 1단을 조직하시었으나, 그 후 정원이 고르지 못하고 통치가 귀일치 못하므로
후일을 기다려 다시 실행하기로 하고 종전대로 직접 교화를 시행하시었다.
대종사의 그 동안 교화하신 순서를 대략 말하자면, 대각 직후에는 어떠한 법을 인용하든지
오직 발심으로써 교화의 주체를 삼으시었고, 원기 2년(1917·丁巳)부터 4년(1919·己未)까지는
신성 단결 공심으로 교화의 주체를 삼으시었고, 원기 5년(1920·庚申) 새 교강 선포 후로는 교강으로써
교화의 주체를 삼으시었다.
대종사, 입산 후 수년을 경과하여, 장차 정식 회상 열만한 기연이 성숙함을 보시고,
하산의 시기를 기다리시었다. 원기 7년(1922·壬戌) 9월에는 송 규를 진안(鎭安) 지방에 보내시어,
만덕산(萬德山) 미륵사(彌勒寺)에서 최 도화(崔道華)를 만나게 하시고,
그 해 12월, 오 창건·송 도성(宋道性)을 데리시고 친히 가시어, 최 도화·전 삼삼(田三三)·
전 음광(全飮光)·노 덕송옥(盧德頌玉) 등을 만나신 후, 이듬 해(원기8년·1923) 3월에 봉래산에
돌아 오시어, 5월에 김제 서 동풍(徐東風)·서 중안(徐中安) 형제를 만나시었다.
이 밖에도, 원평(院坪) 구 남수(具南守)·이 만갑(李萬甲)·장 정수(張正守)·장 적조(張寂照) 등과,
전주 문 정규(文正奎)· 박 호장(朴戶張), 이리(裡理) 박 원석(朴元石) 등 초창의 주요 인연들을
차례로 만나시었고, 원기 9년(1924·甲子) 2월에는 정읍 내장사에서 송 만경(宋萬京)을 만나시었으며,
이어, 최 도화의 안내로 서울에 가시어, 박 사시화(朴四時華) 형제와 성 성원(成聖願)·
이 동진화(李東震華)·김 삼매화(金三昧華)를 만나시고, 그 후 이 공주(李共珠) 등을 차례로 만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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