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3년(1918·戊午) 3월에, 대종사, 저축 조합의 저축금을 수합하신 후,
조합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어떠한 사업이나 가히 경영할 만한 약간의 기본금을 얻었으니,
이것으로 사업에 착수하여야 할 것인 바, 나의 심중에 일찌기 한 계획이 있으니,
그대들은 잘 생각해 보라] 하시고, 길룡리 앞 바닷물 내왕하는 간석지를 가리키시며
[이것은 모든 사람의 버려 둔 바라, 우리가 언(堰)을 막아 논을 만들면 몇 해 안에
완전한 논이 될 뿐 더러 적으나마 국가 사회의 생산에 한 도움도 될 것이다.
이러한 개척 사업부터 시작하여 처음부터 공익의 길로 나아감이 어떠하냐] 하시었다.
조합원들은 원래 신심이 독실한 중에 몇 번의 증험도 있었으므로, 대종사의 말씀에는
다른 사량 계교를 내지 아니하고 오직 절대 복종 하였다. 이에, 일제히 명을 받들어 오직
순일한 마음으로 지사 불변(至死不變)하겠다는 서약을 올리고, 다음날로 곧 방언 공사에 착수하였다.
조합원들이 공사에 착수하니, 근방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냉소하며, 혹은 장차 성공치
못할 것을 단언하여 장담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그 비평 조소에 조금도
끌리지 아니하고, 용기를 더욱 내며 뜻을 더욱 굳게 하여, 일심 합력으로 악전고투를 계속 하였다.
삼복 성염(三伏盛炎)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삭풍 한설에는 추위를 헤치면서,
한 편은 인부들을 독촉하고 한 편은 직접 흙짐을 져서, 조금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아니 하였다.
방언 공사는 이듬해인 원기 4년(1919·己未) 3월에 준공되니, 공사 기간은 만 1개년이요
간척 농토 면적은 2만6천여평(坪)이었다. 대종사, 피땀의 정성 어린 새 농장을 [정관평]이라
이름하시니, 이는 오직 대종사의 탁월하신 영도력과 9인 제자의 일심 합력으로써
영육 쌍전의 실지 표본을 보이시고, 새 회상 창립의 경제적 기초를 세우신 일대 작업이었다.
공사를 마친 후에도 조합원들의 노력과 고생은 쉬지 아니하였으니, 넉넉지 못한 힘으로
근근히 준공은 하였으나, 아직 굳어지지 않은 언(堰)의 뒷 일과 4·5년 간의 해독(海毒)으로
수 년간 작농에 손실을 보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여러 해를 두고 조합원 외에도 육신과
재력(財力)으로써 직접 간접으로 후원을 한 이가 적지 않았으니,
특별 후원자는 유 정천(劉正天)등 18인(별록1)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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