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재세시부터 그토록 염원하시던 새 회상의 자선 사업은,
해방 직후에 전재 동포 구호로 그 막을 열었고, 그 해(1945·乙酉) 11월,
서울 보화원을 한남동에 설립함으로써 첫 결실을 보았으며,
36년(1951·辛卯) 1월, 1·4후퇴 때 총부로 피난 온 서울 보화원 원아 일부를 수용한
익산 보화원(초대원장·宋慧煥)이 발족되고, 38년(1953·癸巳) 5월에 이리시로 부터
인수한 이리 보육원을 운영하면서 부터 새 회상의 무의탁자 보호 사업은 그 기반을 굳히게 되었다.
한 편, 양로 사업도 34년(1949·己丑) 4월 부터 총부 일부에 그 설립을
모색해 오다가 37년(1952·壬辰) 3월에 당국의 인가를 얻어,
총부에 신룡 양로원(초대원장·宋慧煥)을 설립하여, 41년(1956·丙申) 7월,
원사(院舍) 신축과 함께 중앙 수양원으로 개칭하고 이사하였으며,
때를 같이 하여 설립된 전주 양로원과 48년(1963·癸卯) 4월에 설립된
동래 수양원도 무의탁 노인들의 보호 사업과 회상 유공 노인들의 수양에 상당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또한, 전무출신 요양기관 겸 자선병원을 설립하기 위하여
원기 35년(1950·庚寅) 3월에는 보화당 자금으로 금산 과원을 인수,
금산 요양원(초대원장·李東震華)을 설립하여 38년(1953·癸巳)에 총부로 이전,
39년(1954·甲午) 4월에 중앙 요양원(원장·宋慧煥)으로 발전하였으며,
40년(1955·乙未) 5월, 북일면 진료소를 겸한 원사(院舍)를 신축하고,
42년(1957·丁酉) 10월에는 동화병원 설립 인가와 함께 정부의 보조를 받아
44년(1959·乙亥) 10월 총 건평 220평의 2층 병원을 완공 하였으나,
그 후 인사난과 운영난으로 이전·휴원·재개원을 거듭하다가,
법은 재단(法恩財團)과 제휴하여 설립 목적 달성에 부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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