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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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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역사

원기 9년(1924·甲子), 창립 총회를 마치고, 대종사, 상조조합을 신설하여 

종래의 기성조합 업무를 이어 받게 하시고, 각종 자금의 저축 제도를 마련하시니, 

그 종류는, 총부 각부의 자산을 통일 저축하는 각부 자금, 회원의 유지 의무금 납입을 위한 

의무 자금, 정기훈련의 선비(禪費) 조달을 위한 공부비 자금, 선조의 제사 기념을 위한 헌공 자금,

 회원의 각종 사업을 위한 사업비 자금, 회원의 자녀 교육을 위한 교육비 자금, 

회원의 생활을 위한 생활비 자금 등이었다.
이 각종 자금은, 토지 매입과 작농, 양잠 과원 축산 원예 등에 투자하는 한 편, 

영세 생활자에게 저리 융자도 하여 증식하였으며, 처음에는 조합 본점을 총부에 두었으나, 

그 업무량이 영광 지방에 많으므로, 원기 12년(1927·丁卯)에 본점을 영산에 두고 

총부는 지점 형식으로 업무를 분담 운영하였다. 상조조합은 초기 회상의 금고역을 담당하였으며, 

초창기 교단 경제의 발전에 큰 기반이 되었다.
한 편, 총부의 7부(部)중 하나로 예정된 농업부가 창립 총회 후에도 4·5인의 조합 작농으로 

근근히 기초를 유지할 뿐 계속 미미 부진하더니, 원기 12년(1927·丁卯)에 송 만경의 제안으로 

산업부 창립단을 조직하고, 오 창건 등 8인(별록10)의 발기인이 총지부 각단에 호소하여 

영육 쌍전의 이념 구현을 위한 산업부 창립 자금의 확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그 해에 송도성의 제안으로 육영부 창립단을 조직하고, 이 동안 등 7인(별록11)의 발기인이 

총지부 각단에 호소하여 제생의세의 인재 양성을 위한 육영부 창립 자금의 확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발기인들을 비롯한 각처의 모든 단원은 혼연 일체가 되어, 이듬해(원기13·1928)에는 각각 기성창립연합단(農業部創立聯合團 人材養成創立聯合團)으로 발전, 두 기관의 창립을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한 바, 

서울 단원들은 절용 절식 운동, 영광 단원들은 공동 작농, 익산 단원들은 공동 양잠, 

각처 임원들은 근로 작업 등 특별한 활동으로 이에 합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