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총회 후, 대종사, 각지 대표를 데리시고 이리 부근을 일일 순시하여 총부 건설의 기지를
택하시더니, 원기 9년(1924·甲子) 8월,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
(全羅北道益山郡北一面新龍里 現裡里市新龍洞)에 그 터를 확정하시었다.
회장 서 중안이 기지(3천여평)대금과 건축비 일부(6백여원)를 의연하였고,
각처 회원으로부터 상당한 의연금(근8백원)이 수납되었다.
9월에 임시 요인회를 열고 총부 본관 건축을 결의한 후, 바로 공사에 착수하여,
엄동의 추위를 무릅쓰고 10여명의 전무출신과 특별 후원인들의 성심 노력으로,
11월에 비로소 목조 초가(木造草家) 2동(棟) 도합 17간(間)을 성조(成造)하니,
이것이 새 회상 총부 본관의 첫 건설이며 [불법연구회] 간판을 세상에 드러내는 처음이었다.
창립 총회 당년(원기9년·1924)의 교세는 영산(靈山) 신흥(新興) 김제(金堤) 전주(全州)
부안(扶安) 서울(京城) 진안(鎭安) 각지의 회원이 남자 60여명, 여자 70여명으로 도합 130여명이었고,
전무출신은 영광 익산을 통하여 김광선 등 13명(별록7)이었다.
부서의 조직은 인원과 사무의 미비로, 7부 중 서무부(부장吳昌建서기宋道性) 교무부(부장宋萬京)
상조조합부(서기全飮光)의 형식만 두어 사무를 취급하였고, 자산은 정관평 언답과
영산 신흥 부안 익산에 약간의 건물이 있을 뿐이었으며, 언답은 아직 해독(海毒)이
다 해소되지 않아 수익이 아주 적었다.
따라서 비록 회상의 체제는 성립되었으나, 총부의 운영과 전무출신들의 생활 방로는 심히 아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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