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 전무출신 김 광선 등은 이리(朴元石집)에 임시 주접(住接)하였으나,
적수공권으로 생활 방로가 심히 막연하던 중, 부근 송학리(松鶴里)에 척식회사
소유 토지 약간을 빌려 근근 작농한 결과, 약간의 추수를 얻어 공부의 자금을 삼게 되었으니,
이것이 새 회상 산업부의 효시이다.
그 후 재가 출가의 일심 합력으로 근근히 총부의 첫 건설은 마쳤으나,
그 유지와 생활 방로는 계속 막연하므로, 송 적벽 등이 발의하여 원기 9년(1924·甲子) 12월에
엿 제조업(製造業)을 시작하였다. 이에, 몇 사람이 주무(主務)가 되고,
모든 인원은 행상(行商)이 되어, 그 이익으로 1년간 호구(糊口)를 하게 되었으나,
이익도 박하고 외경 접촉이 심하여 공부에 방해될 우려도 있으므로,
이듬해(원기10·1925) 7월에 드디어 폐지하였다. 그 후의 생활 대책으로는 만석리(萬石里)에
척식회사 소유답 약간을 다시 빌려, 출장 작농으로 선비(禪費)를 마련하였으며,
총부 경비는 약간의 회금(會金) 수입과 임원들의 출역 농작 등으로 충당하였으니,
이는 곧 생활 종교의 체제를 세우기 시작한 작업이라 할 것이다.
당시 총부의 전무출신들은 평소 각자 가정에서 일찌기 한 번도 노동이나 행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처지였다. 폭염(暴炎)을 무릅쓰고 논과 밭에 작업하며 풍설을 무릅쓰고
거리와 마을을 배회할 때에 그 고생이 오죽하였으며, 대개는 엿밥으로 끼니를 대신하고
침구조차 부족한 누습한 방에서 종일 피곤한 몸을 쉬게 되었으니 그 간난함이 어떠하였으리요.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고생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오직 새 회상 만난 기쁨으로 유일한 낙을 삼아서
모든 일에 조금도 거리끼는 바가 없었다. 석반 후에는 한 자리에 모여, 하루의 경과를 보고하고
감상과 처리건을 토론하며, 대종사께서는 간간히 법설로 대중의 공부를 지도해 주시니,
그 단란한 공동 생활은 이른 바 지상의 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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