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회보]가 휴간 된지 9년만인 원기 34년(1949·己丑) 4월에
원광사가 발족되고, 그 해 7월에 월간 [원광](주간李恩錫편집李空田)이 창간 됨으로써
교단의 교화 기관지가 다시 나오게 되었다.
정산 종법사는 창간호 권두에 [일원지광 편조시방(一圓之光遍照十方)]이라 휘호(揮毫)하시고,
[무엇이나 진실한 일은 아무리 없애려 하여도 필경은 있어지는 것이요,
거짓된 일은 아무리 있으려 하여도 필경은 없어지고 마나니라]는 요언을 실으시었다.
[원광]은 5호를 내고 6·25 동란으로 중단되었다가, 37년(1952·壬辰) 4월에
보화당(이사宋慧煥)과 이리 고등선원(교감李雲捲)이 합력하여 복간 하였으며,
40년(1955·乙未) 3월에 다시 총부로 옮긴 후, 42년(1957·丁酉) 2월에
교도(부산金白蓮)의 후원으로 자영(自營) 인쇄 시설을 갖추고,
교단 출판 업무의 일부까지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원기 35년(1950·庚寅)에 6·25동란이 일어나, 호남 지구가 위태롭게 되자
총부도 모든 사무를 쉬고 상주 대중의 지방 분산을 개시하였다.
7월19일 공산군이 이리 익산 지구에 침입, 호남 주둔군 본부를 총부에 두게 되매,
부득이 총부 구내의 모든 건물과 시설을 내어 주고,
몇몇 남은 임원(별록23)이 총부 외곽에서 정산 종법사를 모시고
폭격 아래 작업으로 총부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9월 29일, 연합군이 이리 익산 지구를 수복하자 생기를 겨우 회복하여,
지리 멸렬된 문서 주택 등을 수습하는 한 편, 사무 태세를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10월 4일에는, 정산 종법사의 명에 의하여, 각지 교당에 공한을 발송,
①감정이나 복수의 행동에 흐름이 없이 일원(一圓)의 진리에 입각한
원만의 행을 쌓도록 철저 지도할 것, ②전화를 입은 교도 가정에는 빠짐없이 위문하고,
희생자에게는 공동 천도재를 교당에서 거행할 것,
③위험이 없는 교당에서는 예회 야회를 다시 여행(勵行)할 것 등을 지시하였다.
당시, 경난이 자심하였던 예로는, 서울 보화원의 완전 소실과,
영광 지방 각 교당의 장기 수난 중, 특히 영산원의 완전 소개와,
개성·춘천 교당의 일시 소개 등이었으며, 희생자는 전무출신 3명,
재가 요인 5명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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