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34년(1949·己丑) 4월 25일, 총부 구내 영모원(永慕園) 송림 안에
대종사 성탑을 봉건하고, 성탑에 성해 입탑식(聖骸入塔式)을 거행 함으로써
대종사 성업 봉찬 보본 사업이 그 막을 올렸다.
그 동안 각지 교도의 알뜰한 성금을 모아, 황등산 화강석으로 조성한 대종사 성탑은,
연화를 양각(陽刻)한 기단(基壇)위에 연화대석을 받치고, 원석(圓石)을 올려,
그 안에 성해(聖骸)를 봉안한 후 5층의 탑신과 개석(蓋石)을 쌓아,
그해 10월에 준공한 바, 이로써 대종사 열반 후 6년만에 성해가 성탑에 모셔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성탑을 중심한 영모원 일대가 길이 보본 숭모의 성역으로 화하였다.
다음 날 열린 중앙 교의회에서는 [대종사주 성업 봉찬회]가 조직되었고,
이듬 해(원기35·1950)의 중앙 교의회에서는 [창립 제 3회 1대 기념사업 준비 위원회]
(위원장 李共珠)가 구성 되었으나, 6·25동란으로 준비가 부진하여,
그 해 10월의 임시 중앙 교의회에서 기념 총회를 1년 연기하기로 하고,
성업 봉찬회와 기념 준비 위원회를 [3회 성업 봉찬회]로 종합 발족 하는 동시에,
위원장 이 공주 주관 아래 교단의 연혁 편찬과 대종사 성비 봉건을 준비하는 한 편,
제 1대 전체 교도의 사업 성적 총 결산 사무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 때 감찰원(원장 李雲捲)에서는 전체 교도의 법위 사정 사무를 아울러 시작하니,
이는, 원기 16년(1931·辛未) 3월에 대종사께서 제 2차 법위 사정을 실시하신 후
만 20년 만에 시행되는 제 3차 법위 사정 작업이었다.
한 편, 원기 33년(1948·戊子)에는 오 창건의 발기와 감역으로
봉래정사 석두암을 중수하여 제법 성지의 면목을 일신케 하였으나,
불행히 6·25동란 중 소실 되었으며, 성탑을 준공한 그 해(원기34년·1949)에는
[불교정전]의 부분 개쇄(部分改刷)를 행하여, 대종사의 본의에 유감 되었던 점을 1차로 없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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