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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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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역사

불법연구회의 최종 [회규]가 수위단회를 종법사 보좌 기관으로 하고 

1개 항의 의결 사항만을 규정한데 대해 [원불교 교헌]은 수위단회를 

[종법사의 최고 자문에 응하는 기관]으로 하고 5개 항의 의결 사항을 규정하여 

법적으로 수위단회의 기능을 확대하였으며, 사실상 이로 부터 수위단회는 

이단치교의 중심이 되기 시작하였다. 
초창기 남자 수위단의 첫 조직과 법인 성사의 성취 사실은 이미 기술하였거니와, 

원기 11년(1926·丙寅)에 박 세철의 열반으로 이 동안이 입단하고, 

이 순순·박 동국·유 건의 대리로 송 도성·전 음광·조 갑종이 내정되었다가 

16년(1931·辛未) 2월에 정식 입단하였으며, 그 해 3월에 여자 수위단 시보단이 

처음 조직되었으나, 기도 행사 중 뒤로 미루었다. 

원기 20년(1935·乙亥)에 김 기천의 열반으로 유 허일, 

24년에 김 광선의 열반으로  박 대완, 26년에 이 동안의 열반으로 

서 대원(徐大圓),  28년 4월 개편 조단으로 이 완철이 입단하는 동시에, 

여자 수위단이 대종사에 의하여 새로 내정되었다. 

여자 수위단은, 단장 대종사, 건방(乾方) 일타원 박 사시화(一陀圓朴四時華대리金永信), 

감방(坎方) 이타원 장 적조(二陀圓張寂照대리曺專權), 

간방(艮方) 삼타원 최 도화(三陀圓崔道華대리曺一貫), 

진방(震方) 사타원 이 원화(四陀圓李願華대리徐大仁), 

손방(巽方) 오타원 이 청춘(五陀圓李靑春대리吳宗泰), 

이방(离方) 육타원 이 동진화(六陀圓李東震華), 

곤방(坤方) 칠타원 정 세월(七陀圓鄭世月), 

태방(兌方) 팔타원 황 정신행(八陀圓黃淨信行), 

중앙(中央) 구타원 이 공주(九陀圓李共珠)였다. 
그 해(원기28·1943) 6월, 대종사 열반 후 개편 조단으로 송 혜환, 

29년, 이 재철 열반으로 김 대거가 입단하였으며, 

30년(1945·乙酉) 1월25일, 여자 수위단이 실무단으로 발족함에 이르러, 

5인의 대리 단원이 정식 입단하고, [남녀 정수위단]이 

비로소 [회규]에 따라 실무 체제를 갖추었다. 

그 후 31년 4월에 남자 수위단 제 8차 보결 조단이 있었고, 

38년(1953·癸巳) 4월에 창립 제 2대를 맞아 첫 총선거로 

상당수 남녀 단원의 개편이 이루어 졌다.
39년(1954·甲午) 4월에 정산 종법사는 수위단회와 교무 연합회에 내리신  유시로 

[수위단회의 위신과 직능을 더욱 강화하여 교단 통치의 핵심체를 삼으라] 하시었고, 

이 뜻은 44년(1959·己亥)의 교헌 개정에 충분히 반영되었다. 

54년(1969·己酉) 5월에는 그 동안 총무부가 겸행해 온 수위단회 사무처를 

독립 발족(초대처장金允中)하여 분과제와 전문위원제를 실시함으로써 

수위단회는 명(名)과 실(實) 함께 교단 최고의 의결 통치 기관이 되었으며, 

창립 제2대에 들어서서 반백년 기념대회 연도까지 4차의 총선거와 남녀 각 3차의 보결 조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