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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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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역사

원기 46년(1961·辛丑)에 포교사 자격 고시 규정이 제정되고, 

49년(1964·甲辰) 4월에 교역자 고시 규정으로 개정된 교역자 고시 제도가 

49년도 부터 실시 되었다. 첫 고시 위원회(위원장·朴將植)는 여러 차례 회합을 

거듭한 끝에 50년(1965·乙巳) 2월 4일 부터 3일간 시행한 첫 고시로 24명의 합격자를 내었다. 
고시는, 수양·연구·취사의 3과(科)로 하되, 수양과는 염불 좌선 등에 대한 성의의 평가로, 

연구과는 정전 대종경 불조요경 예전 교헌 교사 등에 대한 이해와 강연 정기 일기 등의 

실력 점수로, 취사과는 주의 조행 등에 대한 평가로 채점하여, 

3과의 종합 점수로 합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 후 매년 시행된 고시에 의하여, 

반백년 기념 총회 년도(원기56·1971)까지 도합 218명이 새 교역자의 자격을 공인 받았다. 
원기 40년(1955·乙未) 4월에 전무출신 친목 단체로 수덕회가 창립된 후, 

44년(1959·己亥)에는 전무출신 권장인들의 친목 수양 단체로 정토회가 발족되었으며, 

45년(1960·庚子)에는 학생회 연합회가 창립되고, 47년(1962·壬寅)에는 교우회 연합회가 

결성되었으며, 48년(1963·癸卯)에는 중앙 청년회가 결성되고, 자선기관 연합회가 발족하였으며, 

교학과생 하계 봉사 활동이 시작되고, 12월에는 어린이회 교재 시안(敎務部案)이 작성되었으며, 

49년(1964·甲辰)부터는 유년회가 강습회를 시작하였고, 55년(1970·庚戌)에는 

영광 지구에서 성지개발 협의회가 발족하였다. 
또한, 49년(1964·甲辰) 3월28일자로 종교 재단 원불교에서 학원 재단 원광학원이 분립되었고, 

54년(1969·己酉) 5월에는 교화 재단의 발족이 시도되었으며, 55년(1970·庚戌) 3월에는 

영산 출장소(소장·李中和)가 영산 선원과 영산 지부에서 분리 운영되기 시작하였고, 

56년(1971·辛亥) 1월에는 원불교 신용조합(이사장·宋圓徹)이 설립되었다. 
한 편, 41년(1956·丙申) 5월에는 신생활 운동안을 현상 모집하여 새 생활 운동의 

전개를 시도하였고, 그 해 7월에는 교역자들의 생활 개선 방안을 위한 연구 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47년(1962·壬寅) 12월에는 이흥 과원을 매각하여 총부 유지답을 확장하였고, 

48년(1963·癸卯) 2월에는 황등 율원(黃登栗園)을 매각하여 원광사 시설을 확장하였다. 

또한 50년(1965·乙巳) 4월에는 익산 보화원이 이리 보육원(원장·趙甲種)에 통합되고 

51년(1966·丙午) 11월 부터는 자선의 달(주관事業部)이 실시되었으며, 

52년(1967·丁未) 7월에는 서울 보화원이 수도원의 방침에 따라 홍제원 분원에 

흡수되는 등 40년대와 50년대 초반에는 각 기관 단체의 설립 정비 폐합 등이 성행하였다.